2006년 금년은 동포사회로서는 뜻깊은 해입니다. 한국 야구가 WBC에서 뜻밖의 4강에 진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고 동포사회가 하나가 되어 적극적인 응원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에 크게 이바지한 해이며 또한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여 한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살맛나게 하는 값지고 뜻깊은 해입니다. 이 좋은 2006년도에 한인회장에 출마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영광이며 동포사회가 하나되어 일취월장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1982년 건국대 및 동대학원 경영학과 졸업(경영학석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더 큰 세상에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해 보고자 300달러를 들고 도미했습니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몇 년간 청소업에 종사한 후 바라던 바를 이루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1988년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가든 그로브시에서 부동산 사업에 뛰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한인들이 부동산 중개업을 ‘막바지 인생의 직업’ 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습니다.

저에게는 부동산업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고, 전문인으로 대접받는 직업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부동산업의 매력을 깨닫고 이 업종으로 성공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뉴스타 부동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인커뮤니티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세명의 에이전트들이 모여서 시작한 사무실이니만큼 존재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근면하고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단 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18년을 일해오다 보니 어느덧 24개가 넘는 직영 사무소를 운영하고 11개주에 25여개의 뉴스타 프랜차이즈 지사망을 확장하여 직원과 에이전트를 합쳐 1,500여명이 함께 일하는 큰 회사를 일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뉴스타 부동산의 미래는 뉴스타 식구들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성장의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인들을 대상으로한 비즈니스가 전국적인 규모로 확장되다보니 단순히 돈만 열심히 벌어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성실한 일꾼의 역할도 함께 감당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뉴스타를 성공적인 기업으로 일으켜 세울 때의 그 열정과 끈기를 바탕으로 한인커뮤니티에 봉사할 수 있다면, 한인 커뮤니티도 이제 소수민족의 한계를 극복하여 주류사회에서 대접받고 존경받는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되었습니다.

-잘사는 한인사회에 대해-

우리동포사회는 20년전보다 경제규모가 100배이상 발전되어 왔습니다. 80년대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자바시장이 급격히 발전되었습니다. 다운타운에 가보면 한국인지 미국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한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권이 형성되어 또다른 K Town 이 이루어져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동포은행이 눈부시게 확장되어 은행주식시장을 형성하게 되어 동포사회 경제 발전에 중심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부동산 시장이 활발하여 동포들의 재산증식에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는한국을 포함한 미전국 12개주에 뉴스타의 깃발을 꼿게 되었고 저는 지난 18년동안 CEO의 마인드로 회사를 키워왔습니다. 한국의 서울시의 이명박 시장도 CEO로서 성공한 지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CEO시대입니다. 회사나 단체나 국가나 모든것이 경영마인드를 갖고 일을 추진해 나갈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뉴스타의 CEO가 그 노하우를 갖고 한인회에 접목하여 정말 신나는 한인사회, 서로 돕는 한인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한인사회 이러한 동포사회를 만드는 봉사자로서 열심히 봉사할 것을 약속합니다.

-노인복지문제-

현재 진행중인 노인회관건립을 제 28대에서는 그 과업을 연결하여 노인회관건립건을 완수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이며 특히 노인교통문제와 관련 MTA 등의 관련기관과 연결하여 노인교통복지향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또한 노인이라도 일할 수 있는 분은 일을 할 수 있도록 Job을 연결하고 창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을 하면 더 젋어지니까요. 어르신들을 잘 모시겠습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지원대책-

차세대 지원대책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도 200여명의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뉴스타 장학회를 통해서 1년에 150명 정도의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차세대를 키우고 있는 편이죠. 앞으로 동포사회 어느지역을 막론하고 정치지망생이나 가능한 지역이 있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러한 젊은 정치인이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드릴려고 합니다. 나는 필요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측면의 차세대 지원으로써 한국의 한류열풍이 아시아권에서 미국으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영어권의 동포청소년들이 한국의 대중음악과 연예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동포자녀들이 헐리웃으로, 한국으로 진출 할 때 한인사회나 개인적으로 적극적으로 도움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청소년 문제-

청소년들이 젊음을 발산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대회도 만들겠습니다. 축구대회, 농구대회, 야구대회 등을 개최하여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려 한국인의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오는 독일 월드컵때는 청소년들의 응원단을 모집하여 같이 꼭지점 댄스를 추며 청소년과 어른이 하나가 되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청소년은 한국인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안티 뉴스타 or 남문기에 대해-

참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앞만 쳐다보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자전거의 폐달만 열심히 밟듯이 이곳까지 왔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듯이 남 잘되는 것을 보면 깍아내릴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전부 개인의 부덕의 소치입니다.한인 타운이 헝클어지면 인물이 없어 집니다. 인물은 주위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힘이 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누가 뭐래도 저는 철학을 갖고 봉사하며 일해나갈 것입니다. 안티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훨씬 더 많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2006년도는 음악의 천재 모짜르트가 태어난지 2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럽의 오스트리아는 250년 전에 탄생한 모짜르트를 벤치마킹하여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습니다. 수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비엔나에서는 세계 관광객들이 수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는 모짜르트를 상품으로 250년동안 이용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런 모짜르트 베치마킹의 예처럼 뉴스타의 남문기 브랜드가 250년 후에도 한인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되며 계속 이어어질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포사회, 넉넉한 인심과 잘 살아가는 한인사회가 되도록 최대한 모든 힘을 모아나가겠습니다.